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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들어가며 2016년 6월, 영국 국민의 51.9퍼센트가 유럽연합 탈퇴에 표를 던졌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영국에서 환대는 조건의 언어가 되었다. 누가 머물 수 있는가, 누가 영국인으로 인정받는가, 그 인정은 누가 부여하는가. 앨리 스미스(Ali Smith)의 『겨울』(Winter, 2017)에서 소피아 클리브스(Sophia Cleeves)가 크로아티아 출신 이주민 럭스(Lux)에게 건네는 발화—“당신을 영국인으로 인정해드리죠”(“accept you as English”; 113)—는 이 조건의 구조를 한 문장 내에 응축해낸다. 받아들임은 약속되지만, 그 약속은 타자를 영국성이라는 기존의 범주—영어를 구사하고 영국적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 즉 문화적으로 동화될 수 있다는 증명—로 흡수하는 조건 위에 서 있다. 본고는 이 조건의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디서 균열되는지를 추적한다. 2016년 투표를 “중추적인 순간”(“pivotal moment”; “It’s a Pivotal Moment”)으로 명명하고 4부작의 집필이 이 시대적 분위기에 의해 조형되었음을 밝힌 스미스의 인터뷰 발언들(“I Thought It Would Be about the Seasons”)이 시사하듯, 주요 현대작가들에게 브렉시트는 단순한 정치적 사건을 넘어 하나의 정동적 탈구(affective dislocation)로 경험되었다. 즉, 영국성(Englishness)을 둘러싼기존의 묵시적 합의가 균열되며 그 내부의 긴장과 조건들이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스미스의 『겨울』은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6개월 후의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콘월(Cornwall)의 한 저택에 모인 네 인물의 사흘을그린 소설이다.[1] 보수적 성향의 전직 사업가 소피아, 그녀의 아들이자 자연 블로그 운영자인 아트(Art), 아트가 어머니에게 소개할 여자친구로 위장하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서 즉흥적으로 데려온 크로아티아 출신 이주민 럭스, 그리고 수십 년간 동생과 의절했다 다시 호출된 활동가아이리스(Iris). 이 네 인물의 임시적이고 어색한 모임은 표면적으로는 분열된 영국 사회의 축소판으로 읽힌다. 그러나 본고는 이 작품을 브렉시트의 알레고리적 재현으로 읽는 기존의 해석(이행선; Bényei; Shaw)에서 한 걸음 비켜서, 소피아와 럭스 사이의 이자관계(dyad)—두 인물이 형성하는 비대칭적 일대일 관계의 구조—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 두 인물 사이에서 작동하는 정동적 비대칭이야말로 스미스가 환대(hospitality)라는 윤리적·정치적 개념을 형식적 차원에서 재구성하는 방식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분석 지점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이자관계는아트, 아이리스와의 관계망 안에서 작동하는 것이기도 하므로, 본고는 소피아-럭스 관계를 중심 축으로 삼되 그 관계를 굴절시키는 다른 인물들의 역할에도 주목할 것이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 문학을 다룬 기존 연구는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나뉜다. 한쪽은 향수, 분노, 애도라는 극화된 정동에 주목해왔다. 크리스티안 쇼(Kristian Shaw)는 국민투표를 “잉글랜드의 반란”(“an English revolt”; 72)으로 명명하며 제국적 과거에 대한 향수가 어떻게 정치적자원이 되었는지를 분석했고, 로버트 이글스톤(Robert Eaglestone)은 로런 벌란트(Lauren Berlant)의 “잔혹한 낙관”(cruel optimism; 95) 개념이브렉시트에는 정확히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고 이를 “잔혹한 향수”(cruel nostalgia; 96)로 재구성하여, 미국의 정치 슬로건을 빗댄 표현으로 말하자면 ‘영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Britain Great Again)라는 욕망을 도달할 수 없는 과거에 묶인 멜랑콜리아로 읽는데, 이 독해는 브렉시트를 추동한 집단적 정동의 구조를 설득력 있게 포착한다. 영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실현 불가능한 회복에 묶인 채 해소되지 않는다는 분석은, 브렉시트 지지가 합리적 이해관계 계산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포기될 수 없는 정동적 집착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논문은 벌란트의 개념을 집단적 차원에서 재활성화하기보다, 소피아라는 개인이 자신의 번영을 가로막는 바로 그 영국성에 반복적으로 집착하는 방식을 분석하기 위해 캐슬린 스튜어트(Kathleen Stewart)의 일상의 정동과 교차시킨다. 시빌 아담(Sibyl Adam)과 빅토리아 투엔스카(Wiktoria Tuńska)는 브렉시트 소설 전반에서 멜랑콜리아, 분노, 불안, 그리고 회복에 대한 취약한 열망이 반복적 정동 구조로 등장함을논증한다(Adam 61, 63; Tuńska). 그러나 이 연구들은 그 정동이 개인의 신체 차원에서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는 다루지 않는다. 멜랑콜리아는집단적 감정이기 이전에 소피아의 입에서, 발화의 리듬에서, 럭스 앞에서 보이는 신체 반응에서 작동한다. 또 다른 한쪽은 브렉시트 소설을 작가 단위로 접근하여 개별 텍스트의 정치적·사회적 의미를 분석하는 데 집중해왔다. 국내에서 이행선은 스미스의 계절 4부작을 잇따라 분석하며 『가을』의 인종차별과 사회적 적대, 『겨울』의 국수주의와 거짓의 문제, 『봄』의 이민자 추방과 미디어 인종차별을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조명했다. 특히 『겨울』 분석에서 이행선은 소피아를 국수주의자로, 아이리스를 세계시민으로 대비시키며 럭스를 당사자로서 증언하는 인물로 위치시킨다)이행선, 「브렉시트와 트럼프」 19). 이 독해는 작품의 정치적 구도를 명료하게 포착하지만, 럭스를 두 입장 사이의 매개적 인물로 환원함으로써 럭스가 소피아라는 특정 인물의 정동 구조에 미치는 교란적 효과를다루지 않는다. 영어권 학계에서도 캐서린 베르나르(Catherine Bernard), 터마시 빈예이(Tamás Bényei), 제스 반 암슬부어트(Jesse van Amelsvoort), 엘리너 바이른(Eleanor Byrne)의 연구가 있으나, 럭스를 동유럽 이주민의 표상이나 “퀴어한 환대”(“queer hosting”; 88)의 행위자로 위치시키는 데 그치며, 소피아와 럭스가 형성하는 정동적 관계를 그 구조적 비대칭성과 형식적 작동을 통해 분석한 연구는 부재하다. 이 공백이 본 논문의 출발점이다. 기존 연구는 브렉시트의 정치적 차원을 명료하게 조명했다. 그러나 그 정치가 일상의 미시적 차원에서수행되고 실패하는 방식은 포착하지 못했다. 특히 『겨울』을 정동 이론의 렌즈로 분석한 연구는 현재까지 부재한다. 기존 연구가 정동을 시대적 분위기나 집단 감정의 차원에서 다루었다면, 본 논문은 정동이 개별 신체의 차원에서 수행되고 균열되는 방식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방법론적으로 구별된다. 이데올로기 비판의 언어는 소피아가 왜 “크로아티아 여자”(“the Croatian w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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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une 1939 air in Virginia Woolf’s Between the Acts feels heavy with what Paul Saint-Amour calls “future conditional anxiety”—a restless, anticipatory dread that acts as a medium for injury long before any bombs actually fall (7). The characters seem caught in a state of “perpetual suspense,” trapped within their own limited consciousness and unable to reach a unified understa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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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troduction: Dystopian Science Fiction and the Genealogy of Governmental Technologies In twenty-first-century digital society, technology cannot be understood merely as a tool or a neutral medium. Data infrastructures, algorithmic systems, and platform networks organize communication, information flows, and social relations while continuously regulating individual behavior. Contemporary society is not governed solely by direct rep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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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mbiguity present in the text of Beowulf gives credence to either the virtuous heroism, or inhuman monstrosity, of its eponymous hero. The heroic or monstrous identities of Beowulf and his adversaries are constituted in and through the cultural environment enveloping them, which not only inform their actions but inscribe meanings onto their corporeal bodies. While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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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tion: Mechanical Children and the Ethics of Artificial Emotion Steven Spielberg’s AI: Artificial Intelligence (2001) has acquired renewed urgency as a text through which to understand the ethical implications of creating emotionally capable artificial beings, particularly as developments in physical AI and companion chatbots transform yesterday’s science fiction into tomorrow’s social reality. The film’s exploration of human-rob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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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 중에서도 영문학은 글로벌화한 현대사회에서 젠더, 인종, 계급의 복잡다단한 교차점들을 탐사하기에 대단히 적합하고 유용하다. 근대 이후 자본주의 패권을 영미가 주도하였고, 이 질서에 따라 형성된 글로벌세계의 복잡다단함이 영어를 공유 기반으로 깊고 다양하게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히 영미권 문학뿐만 아니라 영연방 및 영미 제국주의 영향 아래 생산된 영어권 문학 등을 포함하므로 광범위하며 그만큼 근대세계의 모순을 집적하여 표현하고 있으므로 학생들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과 상관관계에 있는 젠더, 인종, 계급 등의 차이에 관한 이슈를 영문학 작품 읽기를 통해 성찰하며 세계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역사적, 사회적 지식과 윤리적 덕목을 훈련할 좋은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최근에 필자는 영미 단편소설 수업에서 읽을 작품을 선정할 때 젠더나 섹슈얼리티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이나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아도 이 이슈들이 첨예하게 제기될 가능성이 높은 작품들 앞에서는 주저하게 된다. 원래는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에 교양수업이란 형식적 틀 안에서 서로 존중할 수 있는 거리를 지키며 함께 토론하고 다양한 의견을 나눌 기회를 제공하고자 이 분야의 고전 단편소설들인 샬롯 퍼킨스 길먼(Charlotte Perkins Gilman)의 「노란 벽지」(“The Yellow Wallpaper”)나 케이트쇼팬(Kate Chopin)의 「한 시간 동안의 이야기」(“The Story of an Hour”), D. H. 로런스(D. H. Lawrence)의 유명한 단편들과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의 「지붕 위의 여자」(“A Woman on the Roof”)와 같은 작품들을 수업에서 읽었다.[1]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이 작품들을 수업에서 다루기가 곤혹스러워졌는데, 학생들이 남녀 불문하고 이 문제에 관해서는 토론 자체를 아예 꺼리기 때문이다. 남녀 사이 ‘관계’의 일은 우리 삶의 중대한 부분이고 삶 전반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젠더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루지 않더라도 성장, 예술, 언어, 부모와 자식 관계, 교육, 사회와 문화, 도덕과 정의, 역사와 미래세계 등의 주제를 다루는 모든 작품에서 결국 이 이슈는 긴밀하게 연관되어 어느 시점에는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모든 수업은 해당 학기 학생들의 구성에 따라 다양한 다이내믹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 이슈와 관련해서는 학생들이 수업에서 제공하는 공적 토론에 참여하기를 꺼린다. 많은 경우 고개를 숙이고 침묵으로 질문과 토론의 시간을 버티거나 소극적으로 적당히 안전한 발언을 하며 상황을 모면하고자 한다. 대면 토론이 어렵다면 온라인 수업 게시판에서라도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을텐데, 학생들은 어떤 형태로든 이 주제에 대한 발화 자체를 꺼리는 듯하다. 남녀 학생 대부분이 서로 불편해하면서 침묵하는데 계속 토론을 시키자니 교수자의 처지에서는 원치 않는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꼴이 되고 교육적 효과를 고려해 종국에는 이 작품들을 읽기 리스트에서 빼게 된것이다. 수업의 주제면에서 오늘날의 젠더갈등이 문제라면 설상가상으로 수업의 형식면에서도 어려움이 중첩되면서 오늘날 강의실에서 학생들의 ‘차이’에 대한 ‘배움’을 방해하고 있다. 산업뿐만 아니라 현실재현의 모든 기반이 디지털화되고 이에 기반하여 인공지능이 상용화되는 현실에서 기존의 텍스트 해석과 분석 방식 및 글쓰기를 통해서 이를 정리하고 확인하는 방식이 얼마나 유효한가 의심받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 기존의 비평이론에 기반한 읽기와, 말의 일관된 논리 구성에 기반한 선형적, 단계적 글쓰기 훈련에 전제된 도식적이고 이념적인 경향과 형식주의는 남녀 학생 간 이념적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조장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달라진 매체에 적합한 새로운 인식적 지도 그리기를 기반으로 학생들이 서로의 상이한 입장을 구체적이고 경험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다른 방식의 읽기와 토론 실습의개발이 필요하고, 더불어 새로운 방식의 비평적·창조적 산출물을 설계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교수자로서 강의실에서 마주한 곤경을 수업의 내용적, 형식적 두 가지 측면에서 탐구해보고자 한다. 첫째는 청년세대의 젠더갈등이 교양과목으로서의 영문학 수업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현상하는지 그 현실을 더 큰 사회적 맥락과 연결하여 살펴볼 것이다.단, 여기서 필자가 제시하는 예들은 순전히 필자의 개인적인 수업 경험에 기반한 것으로서 설문을 거친 통계자료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화할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단지 필자가 파편적이고 개인적으로 경험한 현상의 사회·문화적 맥락, 즉 이 현상이 접속하고 있는 공유 기반을 탐구함으로써, 이 경험의 의미 지평을 성찰하고자 함이다. 이 과정에서 청년세대의 젠더갈등을 서구식 개인화와 한국식 개인화의 차이를 통해 살펴본 사회학자 홍찬숙의 논의를 빌려올 것이다. 홍찬숙은 “압축적 개인화” 및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일어나는 특수한 상황이 한국에서 전개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에 서구페미니즘이 끼친 영향과 한국 남성성의 모델 부재 및 남성이 기댈 수 있는 이론의 부재를 지적하고 최종적으로 서구식 개인화 모델이 우리 현실에 들어맞지 않다는 암시를 준다. 바야흐로 우리 현실에 적합한 새로운 모델 또는 그를 넘어서는 새로운 존재론의 모색이 요구되는 시점이라 하겠는데, 본 글에서는 이러한 모색의 하나로 새로운 존재론을 시사하는 교육실험의 한 예를 살펴봄으로써향후 가능한 새로운 형식의 교양 영문학 수업의 단초를 그려보고자 한다. 이 글의 두 번째 목표는 읽기와 토론, 그리고 이 활동의 성과를 검증하는 학술/비평적 에세이 쓰기를 축으로 돌아가는 기존의 영문학 수업방식이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어떻게 변모하면 좋을지, 이러한 변형은 읽기와 쓰기의 개념을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최근전 세계적으로 대학생의 전반적인 학력 수준이 저하되고 있다는 진단이 무성하다. 많은 전문가는 이를 디지털 미디어가 현대사회와 생활 전반을 잠식한데서 오는 문제점으로 지적하지만, 반대로 이런 진단 자체가 디지털 환경에서 형성된 새로운 인식론적, 감성적 성향에 대해 기성세대가 제대로 평가할 수 없어 비롯된 결과라 볼 수도 있다. 현재 대학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인공지능 기술의 놀라운 도약과 대중화로 인해 기존의 교육방식과 실천을 고수하기 어려워진 상황에 있다. 이에 따라 이 글에서는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오늘날 청년세대가 세계를 인식하고 관계맺는 방식에 기반하여 기존과는 다른 독서경험, 토론방식 및 기존의 비평적 에세이 형식과 다른—창조적이지만 여전히 비평적 관점의 형성을도와주는—새로운 독서 산출물 형식의 가능성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새로운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남녀 학생간의 ‘이념적’ 대립을무력화하고,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교육모델의 설계에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1. 젠더갈등과 영문학 수업: ‘개인화’에서 ‘관계의 존재론’으로 오늘날 강의실에서 체험되는 젠더갈등 현상의 원인은 단순히 청년세대의 특수성으로만 돌릴 수 없는 문제라 포괄적 시각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다. 최근 청년세대의 젠더갈등을 서구 사회학의 ‘개인화 이론’에 기반하여 샅샅이 추려본 홍찬숙의 논의는 강의실 젠더갈등의 현상을이해하는데 유용한 맥락을 제공한다. 홍찬숙은 한국 사회에서 세대 간 문화변동과 성별 문화변동 과정에서 유난히 갈등과 충돌이 두드러지는이유가 “한국적 근대화 경로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진단한다(홍찬숙 개인화 56). 그가 이론적 근거로 사용하는 울리히 벡(Ulrich Beck)의 사회화 이론에 따르면, 서구의 개인화는 근대 시민혁명과 현대 신사회 운동을 거쳐 두 단계로 진행된다. 즉 근대 산업화 과정에서 시민계급 남성이 전근대적 가부장제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1단계 개인화이고, 1단계 개인화의 주축이었던 시민 남성 계급의 안정성이 깨지면서 불안정성이확대됨과 동시에 해방의 주체가 여성과 다른 사회적 타자로까지 확대되며 2단계 개인화가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는 영리하게도 탈산업화와 신자유주의 등의 “자기 혁신”을 이뤄내며 여성을 노동시장에 끌어들이기 위해 노동시장의 가부장성을 완화하고 성역할로부터의 여성해방을 장려하면서 2단계 개인화를 지원한다(56-60). 그러나 한국의 군사정권 주도의 산업화 과정에서는 1단계 개인화, 즉 “전근대적 공동체로부터 개인이 풀려나면서 개인주의 규범이 사회적 관계의 새로운 기초가 되는” 사회관계의 재배치가 일어나지 않았고(86), 87년 정치 민주화이후 민주화와 성평등 정책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근대적 발명인 핵가족, 사회계급, 국민국가로부터 개인들이 풀려나는 2단계 개인화가 여성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즉 한국에서는 1, 2단계의 개인화가 압축적으로 진행되면서, 비동시성의 동시성에 기인한 혼란이 ‘성 대결’로 환원되고 왜곡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62). 청년 남성의 측면에서 보면 “노동시장의 가부장성 약화”가 “남성 가장의 권력 약화(비정규직화 및 취업기회 상실)”로 진행된 반면에 여전히 개인이 되지 못하고 집단주의적 규범에 매여있다 보니 기득권 상실이 더 크게 인지될 수밖에 없다(61). 즉 이들에게 기존 가부장제로부터의단절은 개인적 해방이라기보다 오히려 공동체적 보호를 박탈당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129). 이런 맥락에서 한국 청년 남성에게 개인화는 “패배”로 인식될 가능성이 증가한다. 반면에 애초부터 계급조직으로부터 주변화한 여성에게 개인화는 새로운 “성취 명령”으로 인식될가능성이 크다(73). 개인주의로의 규범 변동에 있어 한국에서 여성 주도의 2단계 개인화가 페미니즘적 특성이 두드러지는 이유다(90). 과거의수직적 가부장제를 넘어 수평적 가부장제로부터의 해방을 요구하는 청년 여성은 장구한 역사를 가진 서구페미니즘 담론을 수용하여 새로운자유의 주체로 등장하였으나, 청년 남성은 한국적 특수성이 더해져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상황을 맞아 자신들의 문제를 표현할 언어와 담론이부재한 처지에 놓인 것이다(21). 이와 같이 한국적 개인화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비동시성의 동시성으로 인한 혼란과 “성별화 정치의 변증법”(홍찬숙 개인화 130)은 강의실에서 현상하는 젠더갈등을 이해하는데 좋은 참조가 된다. 가령, 강의실에서 가부장제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모순과 대립 현상을 예로 들어보자. 서두에서 언급한 쇼팬과 길먼의 단편소설은 흔히 가부장제하에 억압된 여성의 욕망과 해방 이야기의 고전이라 여겨진다. 특히 비교적단순하고 명백한 쇼팬의 단편과 달리, 내용과 형식 면에서 다양한 분석적 함의를 내포한 길먼의 소설은 집과 가부장 담론의 폭압에 미쳐가는여성을 그린 비판적 여성주의 소설내지는 젠더화된 가정 공간이 고딕적 주체를 생산하는 추이를 기록한 여성주의적 소설의 전형으로 읽힌다.[2] 실상 가정이라는 사적공간에서 행사되는 가부장제의 부당함에 관한 한 남녀 학생 모두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홍찬숙이 청년 남녀를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봐도 가부장제 의식에 있어 청년 남성들은 기성세대 남성들보다 훨씬 “선진화”되어 있고(홍찬숙 갈라치기 197) 사적가부장제—가족 내 폭력이나 불평등한 성역할—에서 성평등한 규범을 선호한다. 이들이 반발하는 지점은 공적 가부장제—국가정책이나 일자리—에서 제도적 성평등을 강화하는 것이다. 여성과 ‘이익’을 두고 사회에서 경쟁하는 상황에 관련된 불만이 제도적 성평등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가부장제 비판에 있어 여성은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반면에 남성은 개인적, 사적 문제로 접근하려는 차이가 나타난다(홍찬숙 개인화 171). 이런 복잡한 입장의 차이가 서로 뒤엉키다 보니 강의실에서 가부장제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비판적분석이 가능한 빅토리아 시대 작품에 대해 쉽게 공감대가 형성되거나 반대로 소통하지 않으려는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다. 가령,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의 시 「나의 마지막 공작부인」“My Last Duchess”에 나타난 폭력적 가부장인 공작에 대한 비판은 대부분 큰 이의 없이 공유한다 (Norton Introduction, 667). 그러나 똑같은 19세기 작품이라도 사적 가부장제의 폭력이 명백한 브라우닝의 작품은 수용이 가능하지만, 여성 주인공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가부장제를 공개적으로 공격하며 남편이 죽기를 욕망하거나 쓰러뜨리는 결말로 끝나는여성작가의 소설은 토론이 잘 진행되지 않는다. 홍찬숙에 따르면 가부장제에 저항하면서 청년 여성은 불평등과 차별을 결합하여 보는데 반해(갈라치기 79–81) 청년 남성은 불평등과 차별을 분리하여 받아들인다. 남성은 세습되는 부와 권력의 불평등에 더 민감하며(갈라치기 125) 이들에게 불평등은 경제적 격차, 계층/계급적 차이를 의미하는 한편, 차별은 남성에 대한 역차별과 같은 성별 차이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온갖 부와 권력을 거머쥐고 자의적으로 부인을 살해한 공작과 달리, 큰 잘못이 없어 보이는 평범하고 성실한 중산층 남편이 몹쓸 인간으로 비판받는 듯한 이런 작품들은 수용하기 어려운 역차별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가부장제를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여성주의적 입장 역시 복잡다단한 삶의 모든 문제를 가부장제와 남성우월주의의 문제로 치환하는 ‘환원의 순환 고리’에 빠지기 쉽다. 이러한 태도는 복잡다단한 작품세계를 충실히 검토하고 이해하는데 큰 걸림돌이 된다. 학습한 이론을 직간접적 경험을 통해 검증하고 성찰하는노력 자체가 관념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차단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홍찬숙이 말한 “성별화 정치의 변증법”은 반여성주의뿐만 아니라 여성주의 입장을 통해서도 지속된다고 말할 수 있다. 길먼의 작품은 워낙 여성주의적 주제의식이 전경에 있다보니 주제적 측면에서뿐 아니라 작품 언어의 구조적 패턴과 가부장제 담론의 유사성을 논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실상 이 작품은 젠더 이슈에만 묶이기엔 내포하고 있는 함의가 무궁무진한 작품이다. 이런 점에서 길먼의 「노란 벽지」를 “경계를 넘나드는”(boundary-crossing text) 텍스트라 정의한 칼라 머피(Karla J. Murphy 339)는 이 작품이 단순히 젠더 관점뿐만아니라 작문, 문학, 언어학, 심리학, 철학, 장르와 문화연구 등 다방면에서 접근과 활용이 가능한 작품이라 주장한다(Murphy 339). 메타 내러티브적인 요소 역시 가지고 있어서 이야기 자체를 교육학적 메타포로 읽는 탐구도 가능하고,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우울증, 고독, 고립과 소통 등에 관한 주제를 심도있게 논의할 수도 있고, 상호텍스트성의 관점에서, 또는 독자-수용적 관점에서 작품을 읽는 것도 가능하다(340). 화자가 처한 상황의 은유성이 함축적이어서 어떤 형식으로든 억압을 경험한 개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보편성을 담고 있는 작품이 젠더갈등이라는 이념적 대립으로 환원되다 못해 대립과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 남녀를 불문하고 읽기조차 원치 않는 작품이 되어가는 현실이다. 수업에서 읽을 작품 리스트에서 제거한 소설 중에 필자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작품은 도리스 레싱의 「지붕 위의 여자」다. 이 작품의 명시적 주제는 젠더갈등 자체가 프레임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갈등은 세대갈등, 계층/계급갈등, 이념/종교갈등, 남녀갈등, 인종갈등 등이 복잡하게얽혀 있는 ‘중첩성’이 근본적 특성이다. 「지붕 위의 여자」는 열사병에 걸릴 듯한 혹서에 지붕에서 배관수리 작업을 해야 하는 노동자계급 남성들과 옆집 지붕에서 옷을 벗고 썬텐을 즐기며 책을 읽는 지식인 여자 간의 불쾌한 만남을 통해 어떻게 중첩된 사회적 갈등의 양상이 젠더갈등의 프레임으로 환원되어 남녀간 혐오와 괴롭힘으로 끝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Understanding Literature 655-61). 피해자는 바로 혐오와 괴롭힘의 회로에 들어가 고통받고 있는 남녀 개인 당사자들이다. 레싱은 자기도 모르게 차별 담론의 대리인이 된 가해자/피해자가 처한 사회, 경제, 심리적 맥락을 묘사하는 재능이 탁월한 작가다. 이 작품은 청년 학생들이 겪고 있는 젠더갈등을 간접 체험을 통해 ‘메타적으로’ 톺아볼 다양한양상과 층위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젠더갈등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다 보니 소통을 시작하기조차 어려운 작품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남녀간 소통 불능의 원인이 다름 아닌 젠더 프레임 자체에 있다는 주제를 명시적으로 표현한 또 다른 작품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시 「집안의 매장」“Home Burial”은 비록 남녀의 대립을 다루고 있으나 앞서 언급한 대로 가정이라는 제한적이고 사적인공간에서의 대립을 다루기 때문에 비교적 토론이 활발하다(Nor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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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환경인문학(environmental humanities)은 기후변화로 대표되는 전 지구적 생태·환경 재앙의 시대에 인문학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하려는 학제간 연구 분야다.1) 기후변화는 단순히 지구과학적 현상일 뿐만 아니라 생태계 전반과 정치·안보, 보건·의료, 경제·사회, 문화 등 인간 문명의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환경인문학은 당면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의 분과학문 체제를 극복하고 자연과학, 인문·사회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창의적으로 통합하고 횡단한다.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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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들어가며 이 글은 미국 현대언어학회(Modern Language Association, MLA)에서 발간하는 「MLA 고용정보 보고서」(“Report on the MLA Job List”) 보고서와 연례 학술대회 프로그램 자료를 분석하여, 미국 영문학계의 최근 동향과 연구 경향을 개괄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한국 영문학계와 비교함으로써 두 학계의 특징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나아가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게 된 배경과 구조적 요인을 검토함으로써 한국 영문학계의 현재를 파악하고 미래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다만, 이 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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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스키(Rita Felski)는 미국 버니지아대학의 영문과 교수로,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페미니즘과 비판이론의 다양한 교차를 치열하게 사유해온 학자다. 최근의 포스트비판(postcritique) 논의에서 펠스키의 작업이 특별히 흥미로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앵커(Elizabeth S. Anker)와 공동 편집한 『비판과 포스트비판』(Critique and Postcritique, 2017)이 비판에서 포스트비판으로의 전환을 이해하는 데 신뢰할 만한 안내서로 자리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요성에 비해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논의되었지만, 이보다 앞서 출간된 『비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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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미문학연구회가 창립 30주년을 맞이했다. 창간호 이래 30년간 이어져온 『안과밖』의 ‘동향’ 꼭지에서 셰익스피어 연구를 다룬 논문은 지금까지 세 편이 있다. 6호에서는 『대안적 셰익스피어들』(Alternative Shakespeares) 2권(1996)을 중심으로 탈식민주의 담론의 확장, 페미니즘 연구가 젠더 연구로 전환되는 양상 등을 주목했다. 17호에서는 국내 영문학 주요 저널에 게재된 논문을 대상으로 ‘여성론적 논의’를 중심에 둔 셰익스피어 연구동향이 검토되었다. 27호의 동향 논문은 『대안적 셰익스피어들』 3권(2008)과 영미권의 대표적 셰익스피어 저널인 『셰익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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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소년의 시간」(Adolescence, 2025)은 같은 반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13세 영국 소년의 이야기다. 2025년 3월 공개 직후 4주 연속 글로벌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얼마 전 제76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아역 배우 쿠퍼(Owen Cooper)의 남우조연상 수상을 비롯해 작품상·감독상·각본상·여우조연상까지 주요 상을 휩쓸며 6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압도하는 자본으로 치장한 블록버스터나 잘 알려진 배우들을 기용하지 않은 미니시리즈가 전 지구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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